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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나와 오늘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단단해지고 싶은 엄마, 단단한 레이나입니다.

이 블로그는 아이와 함께 자라가는 엄마의 이야기와
초등 교육, 엄마표 학습, 아이 성장 과정에 대한
실제 경험과 방법을 함께 기록하는 공간입니다.

✔ 엄마표 학습 방법과 공부 습관 만들기
✔ 초등 아이 성장 과정과 현실적인 고민
✔ 부모의 감정, 관계, 그리고 육아의 방향

이 기록이 비슷한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과 방향이 되기를 바랍니다.
늘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엄마의 성장/한 걸음 이야기

레이나 스토리 - 3. 그날의 눈물, 내 꿈을 바꿔놓았다

by 단단한 레이나 2025. 7. 31.

안녕하세요. 단단한 레이나입니다. 😊
오늘은 ‘육아와 일’을 동시에 껴안고 살아가던 어느 날들의 기록을 풀어보려 해요.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시간이었어요. 누구는 말하죠. 육아도 일이고, 회사도 전쟁이라고. 그런데 둘 다 매일매일 함께한다면 어떨까요?

 

시간이 흘러 콩이(태명)는 댄댄이가 되었고 네 살이 되었어요. 하지만 12월생이라 만 나이로는 두 살, 아직 말도 제대로 트이지 않았고 감정 표현도 서툴렀어요. 마침 그 무렵, 코로나19가 터졌고, 강의는 전면 비대면으로 전환되었죠. 저는 집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수업을 하고, 댄댄이는 옆방에서 열을 앓기 시작했어요. 어린이집에만 다녀오면 어김없이 열이 났고, 저는 진심으로 깨달았습니다. ‘어린이집 다니면 자주 아프다더니… 진짜구나.’

 

하루는 카메라 앞에서 디스플레이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바로 뒤에서는 댄댄이가 울고 있었죠. 그 울음소리가 그대로 마이크에 담겨 수업에 송출됐고, 저는 학생들에게 사과한 뒤 아이를 안아 달래고, 다시 노트북 앞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어쩌면 이 모든 풍경이 내 인생에 있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낯설고도 치열했어요.

 

어린이집에 잘 가는 날도 물론 있었지만, 그게 마음 편함으로 이어지진 않았어요. 밥도 잘 먹지 않고, 낯선 환경에 쉽게 무너지는 아이를 보내놓고 강의에 집중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었어요. 한쪽 눈은 화면을 보고, 한쪽 마음은 아이에게 가 있는 그런 나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텼습니다. 어떻게든 해냈어요.

 

그러던 2020년 여름, 정부 방침이 바뀌며 대면 수업이 조금씩 재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다시 강의실로 나가야 했고, 그건 새로운 문제를 불러왔습니다. 집은 인천, 학교는 수원. 왕복 4시간 거리. 더 이상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단 걸 알았고, 결국 베이비시터 이모님을 구했어요.

 

하지만 댄댄이는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라 이모님과 잘 맞지 않았어요. 어느 날, 수업 중이던 저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얘가요! 저한테 장난감을 다 집어던지고 소리를 질러서, 옆집에서 무슨 일이냐고 찾아왔어요!”

이모님의 격앙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제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죠. 강의실을 뛰쳐나와 두 시간을 달려 집으로 향하는 것.

 

🔖 이미지 생성 출처: 챗GPT ( https://gptonline.ai/ko/ )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를 안았어요. 작은 어깨가 떨리고 있었고, 제 눈물은 콸콸, 정말로 콸콸 쏟아졌습니다. 그게 내가 가진 감정의 바닥이었고, 또다른 시작이었어요.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둬야 하나.”

 

교수라는 타이틀은 부모님의 꿈이었고, 나의 꿈이었고, 나의 20대를 견디게 만든 하나의 줄기였어요. 나는 그 꿈을 위해 늘 견뎠고, 포기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어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댄댄이만 평온하고 행복하다면, 내 꿈은 이제 그만 꿔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내 꿈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저는, 직업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인천 집 근처에 대형 아카데미가 새로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곳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다시 학원 강사로 돌아간 거예요. 예전처럼 외래교수, 겸임교수로 불리는 이름은 아니었지만, 저는 제 아이 곁에 있을 수 있었어요. 그게 저에겐 무엇보다 큰 결정이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요.

“쟤도 어쩔 수 없네. 역시 결혼하고 아기 낳으면 경단녀 되는 거라니까?”

“교수는 물 건너갔네~”

그 말들이 마음에 꽂히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에요. 억울했고, 서러웠고, 속상했어요.

하지만 저는 마음을 꽉 움켜쥐었습니다.

괜찮아, 버티자, 또 해내자. 댄댄이를 내 손으로 키울 수 있다면, 그거 하나면 다 괜찮아.

 

그렇게 저는 다시, 나의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교수라는 타이틀은 내려놓았지만, 나의 가르침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아이 곁의 시간은 더 소중해졌습니다. 지금도 저는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처음으로 나를 내려놓고 내가 아닌 아이를 위해서,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엄마라는 이름으로 했던 첫 선택. 그 시절, 저는 아이를 품에 안고 살았지만 동시에 제 인생도 새롭게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흔들리고 또 버티며, 그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갔던 시간이었죠.

 

그런데 저 시절을 떠올리면 슬쩍 헛웃음이 나는건요. 저는  저시절 제가 굉장히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내가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도 덜 컸었단 사실이에요. 또 그 아카데미에서 5년이란 세월을 보내며 댄댄이가 9살이 되는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이 성장했거든요. 

 

다음 이야기에서는, 엄마로서, 강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나'로서 어떻게 삶을 꿰매며 걸어왔는지를 함께 나눠볼게요.

여전히 고단하지만, 그래서 더 단단해진 시간들로 곧 다시 인사드릴게요. 🌿